오연복 시인의 “상추”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우리의 먹거리 채소인 상추를 의인화 하여서

상추의 일생을 그려가고

인간들을 위한 적선과 사랑의 주체로서

상추의 가치를 승화시키는

시인의 애니미즘(animism)적인 상상을 마주하면서

오늘 삼겹살에 맛깔스런 상추쌈 한 번 하실래요?


상추 / 오연복

(Ⅰ)
그녀를 포태한 씨앗은
더없이 가벼운 보푸라기로 대지에 내려앉는다
식탐이 없는 그녀는 새벽이슬에도
키가 한 뼘 한 뼘 자란다
나의 손아귀에 꽃 물살 겹치마가 한풀한풀
야들한 적선을 한다
그녀가 치맛자락을 내려놓을 때마다 흘리는
새하얀 피의 내력은 고결한 유전자의 화신이다
스물 네 겹치마를 홀딱 벗어던진 그녀의 알몸은
노란 촛불잔치를 펼친다
번뇌가 노랗게 불태워진다
산화한 번뇌는 백결의 사랑으로
보풀보풀 승화한다

(Ⅱ)
그녀는 너그러운 포용력의 소유자다
그녀의 부드러운 치마 속에서는
육(肉)과 고명의 황홀한 교합이 이루어진다
나의 탐욕스러운 혀끝을 적시는 그녀의 촉촉한 즙액은
절제의 미학을 연주한다
절묘한 속궁합의 쌈에 묻혀가는 그녀의 영혼은
거룩한 희생이다
걸쭉한 샐러드를 아삭하게 보듬는 그녀의 치맛자락은
살뜰한 봉사자다
겉절이로 드러누운 그녀의 간간한 자태에서는 우직한 농부의
땀 냄새가 난다
나는 우아한 연주자의 영혼을
우직하게 보쌈한다
 

▲(오연복 시인 프로필) 시인, 작사가, 시낭송가
▲(오연복 시인 프로필) 시인, 작사가, 시낭송가
샘터창작문예대학 강사, 한국스토리문인협회 이사, 가곡동인

수상 ⁚ 대한민국 인물대상 수상(2014), 샘터문학상 대상 수상(2018), 전북의 별 표창 (제8회), 중앙일보 전국독서감상문대회 최우수상 (제5회), 글사랑전국시낭송대회 최우수상 수상 (제27회) 등 다수

동인지 ⁚ <꿈을 낭송하다> <이슬 더불어 손에 손 잡고> <바람의 서>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사랑, 그 이름으로 아름다웠다>외 다수

가곡작시 ⁚<물푸레나무 타령> <변산반도 마실길> <김밥> <향일암> <시인의 아내> <행복한 결혼> <첫눈> <당신 그리울 때> <사랑의 사계절>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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